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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enation da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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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때 맞춰 떨어진다. 준비해 간 하얀 밀가루가 적당히 살에 들러붙을 만큼.
나는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 아니 사람이 적당히만 많았으면 좋겠다.너무 없는 것도 아니고 너무 많은 것도 아니고. 밀가루가 많이 하얘야 할 텐데...'
따위를. 옆에서는 사진을 찍어주기로 부탁한 효린이가 나를 최대한 멀리서 찍으려고 건너편 까페에 가서 찍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려 밀가루도 사고, 담배도 샀다.
휴. 이제 시작만 하면 되었다. 나는 '이태원역'이라 써진 비석 위에 내 소지품을 올려놓고 밀가루를 뜯었다. 밀가루 속에 손을 집어 넣어서 한 움큼 꺼내 보았다. 부드러운...
그 순간 해밀턴 호텔 음반가게 아저씨가 밀가루를 꺼내 팡팡 손바닥으로 치자 소리친다.
길거리 더럽히지 말고 여기서 그러지 말라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도 제발 하기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저씨가 좀 말려줘요.
그러나 시간은 자꾸 달려가고 있었다. 말도 거꾸로 나오고 있었다. '이거 그냥 밀가룬데요'
아저씨는 내가 무엇을 할 지 알고 계셨던 걸까? 아무튼, 제길.
어제도 립스틱을 바른 채 지하철에서 이것을 시도해 봤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이 보는, 그리고 정지되어 있는 곳에서, 재미를 위해서든 소외를 느끼기 위해서든 이목을 집중받는 뭔가를 하기는 태어나서 처음 이었다. 아니, 있었던가? 할머니한테 혼나서 쫄딱 벗고 대문 앞에 서 있었던 적도 있긴 했지. 자아의 확장이라기 보다는 트라우마에 가까운 경험이었지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한 오 분이 지났을까, 효린이가 빨리 하라며 아우성이다. 아, 아, 아, 정말 해야되나, 나는 구도를 정해주는 척 하며 또 시간을 끌었다. 그렇지만 이미 옷이며 신발부터가 이상한 나라의 소녀 컨셉이기 때문에 내가 서 있는 것만으로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보이는 데 더 이상하면 어떠리, 혼자가 아니라 효린이가 같이 있어서 타력이 생겼다. (이상하게, 나는 괜찮은데 효린이가 본다는 게 더 부끄러웠다. 내가 나를 기록한다는 사실이 남이 나를 보는 것 보다 더 쌀쌀맞게 느껴졌다. 나를 보고 있는 렌즈가 유일한 나의 분신이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학부모처럼,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지만 유일하게 나를 기록하고 내가 나를 평가하는 그런 것이니까. 흔적 없이 끝나버렸으면 좋을걸. 이것은 필요악인가? )
어쨌든 다시 밀가루를 한 움큼, 부드러운 가루가 손에서 어떤 형체 없이 뭉게진다. 시간도 같이 밍기적 거리고 있다. 인생이 밍기적 거리고 있다. 해야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고 싶은 이유보다 천만배는 많아 보인다. 또 한번 더  밀가루만 애써 주물러 본다. 부끄럽다. 씨발. 쪽팔린다. 인생은 다시 주물떡 주물떡 어떤 형체를 갖지 못한 채 내 손안에서만 뭉게져 간다. 이럴수가. '야! 빨리해라 걍' 소리가 들린다.
에라이. 눈 꼭 감고.



얼굴이다.

팡팡

얼굴, 팔,

'얘는 왜 이러고 있노?' 하는 아줌마 소리가 들린다.

하얘졌다.
나는 하얀 마스크를 쓰게 된 거다. 내가 만든.

좀 더 하얘져야지. 그러면 담배를 피워야지.
비도 살갗에 떨어져서 나는 완벽한 요리되기 전의 튀김상태가 되었다.
눈을 꼭 감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반응은 내 분신만이 알고 있다.

아래 영상에서 확인,


케밥을 먹으며 카메라의 영상을 확인했다.
아, 나 진짜 살쪘다. 게다가 담배까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방금 알을 깨고 나온 핏덩어리 같아 보였다.


[하기 전과 하고 나서의 차이점은 어쩐지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한 것과 안 한 것이다.

내 자아는 얼만큼 확장되었을까? 어쩌면 이번에도 실패였는지 모르겠다.
매일 실패만 하니까. 그치만 확실한 건 이번엔 반응이 있었다는 거다.

아저씨가 짜증내고,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나는 바보가 된 느낌을 받았고, 아줌마들은 이상한 소리를 하고...x]

소외감이라는 게, 이런 기분나쁜 것인가?
남들과 달라진다는 게 스스로를 감옥에 쳐 넣어서 끝없이 자기를 학대하고 실험하고 치유하는 끝없는 과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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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Flickr의 세트